책소개
산 후안 데 라 크루스의 신비주의 신학
산 후안 데 라 크루스(이후 산 후안으로 표기)와 <맨발의 가르멜 수도회>를 만든 산타 테레사 데 헤수스는 수도회 개혁의 동반자로서, 비슷한 성향의 스페인 신비주의 작가로서, 마치 바늘과 실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를 맺어 왔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산 후안은 여러 점에서 그의 동반자와 다른 면모를 보여 준다. 산타 테레사가 쇠퇴기에 처한 스페인 가톨릭 교회를 살리기 위해 많은 활동을 한 반면, 산 후안은 영혼 구원이라는 개인적 측면에 더 치중했다. 산타 테레사가 왕성한 활동가로 주로 행동을 통해 사역을 해 왔다면 산 후안은 행동보다는 이론에 치우친 신학 연구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산타 테레사가 개혁 운동의 집행자였다면 산 후안은 개혁 운동의 이론적 근거를 제시한 사람이었다. 이러한 차이점은 서로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고, 이것은 결국 수도회 개혁의 완성이라는 공동 목적을 달성하는 데 효과적인 수단으로 작용했다.
신비주의 신학에서도 산 후안은 산타 테레사와 의견을 달리한다. 산타 테레사가 신과의 합일에 이르는 과정을 단계별로 설명한 데 반해 산 후안이 보다 주목한 것은 신의 은혜에 도달하기 위한 영적 빈곤 상태다. ‘어두운 밤’이라 칭하는 이 체험은 신의 영원한 영광의 빛에 사로잡히기 직전 상태로 신의 혹독한 시험을 의미하며 영혼이 신과 합일에 이르기 전 반드시 통과해야 할 과정이다. 따라서 산 후안의 신비주의 신학은 ‘밤’의 상징으로 대별된다. 신과의 합일에 이르는 과정인 ‘정화 단계’와 ‘조명 단계’보다는 오히려 그 중간 단계인 ‘영혼의 밤’에 주목하고 있다. 즉 ‘정화 단계’와 ‘조명 단계’ 사이의 ‘감각의 밤’ 그리고 ‘조명 단계’와 ‘합일’ 사이의 ‘영의 밤’이 그의 신학적 사유의 대상이다. 또 산 후안 신학은 내적 기도에 집중되어 있다. 그리스도의 인성을 가르치는 것은 초신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고 보다 성숙한 신도는 이 내적 기도에 힘써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산 후안 데 라 크루스의 작품
산 후안은 많은 작품을 남겨 놓지 않았다. 산문으로 된 그의 신학적 주장을 담은 교리서 몇 권과 몇 수의 시가 전부다. 그러나 질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뛰어나다. 산 후안의 글들은 성직자로서 사역이 무르익었을 때 남긴 것들이다. 그러므로 그의 글에는 완숙함이 넘쳐 난다. 충분한 경험과 사색을 통해 얻은 것들이기 때문에 글 하나하나에 신을 향한 그의 사랑과 소명에 대한 확신, 사색과 성찰의 열매들이 가득 담겨 있다. 산 후안은 그의 시에 대한 해설서로 산문을 썼다. 그의 시 자체가 고도의 함축적 의미를 담고 있는 상징들을 사용해 그의 신비주의 신학을 표현한 것이기 때문에 이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해설서를 쓴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산문 작품은 신비주의 신학의 교리서라고 할 수도 있다.
산 후안은 시를 신과의 내밀한 사랑을 표현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으로 보고 있다. “사랑하는 영혼들이 이해하고, 느끼고, 소원하도록 성령 하느님이 역사하시는 말 못할 그 경험”을 전달할 수 있는 인간의 언어는 흔치 않다. 따라서 이 경험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특수 언어인 시가 필요하다. 이 시어를 통해 영혼은 그가 느끼는 신비한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으며 또한 하느님의 신비와 비밀에 속한 것들이 제공하는 영적 풍성함을 맛볼 수 있다. 시가 지니는 함축성과 리듬은 신의 신비한 메시지를 전하기에 충분하며 이는 이성적 측면보다 감성적 측면에 호소하는 바가 크다. 그래서 신과의 신비한 내면적 경험을 중시하는 가르멜 수도회는 시를 영적 체험을 전달하는 가장 효과적 수단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산 후안 데 라 크루스와 가르실라소 데 라 베가
산 후안 시의 뿌리는 세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하나는 스페인 카스티야 전통 교양시인 칸시오네로, 또 하나는 가르실라소로 대표되는 이탈리아 풍의 스페인 르네상스 시, 마지막으로 성서의 테마들이다. 이처럼 산 후안이 종교시인임에도 불구하고 세속시의 흐름이 그의 시 작품의 뿌리로 등장한 것은 산 후안이 자신의 종교적 체험을 전달할 도구로 세속시의 형식을 즐겨 취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분명한 사실로 산 후안뿐 아니라 16세기 후반의 많은 종교시인들이 이러한 패턴을 취했다. 특히 산 후안은 당시 스페인 교양시의 흐름을 지배하고 있었던 이탈리아 풍 시들의 형식적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그의 신비주의적 종교 체험을 이 시의 형식에 많이 담았다. 산 후안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풍의 세속시를 종교적으로 승화시켜 자신의 신비주의 시학을 표현한 것이다. 특히 세속시인 중에서 산 후안의 마음을 가장 끌었던 시인은 16세기 초 스페인 르네상스 시의 대가인 가르실라소 데 라 베가였다. 산 후안은 가르실라소 시의 여러 구절을 취해 독특한 상징 기법으로 이를 종교적으로 승화시켜 자신의 신비주의 신학의 용기로 사용했다.
200자평
‘지식을만드는지식 시선집’. 스페인어권 모든 시인의 수호성인, 산 후안 데 라 크루스. 가르멜 수도회 개혁의 주역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십자가의 성 요한으로 알려졌다. 중세 신비주의 신학의 대가인 산 후안의 영적 체험을 시로 만난다. 현전하는 산 후안의 시 모두를 번역, 주해한 국내 최초 완역 시집. 최낙원 교수의 친절한 주석과 해설이 난해한 작품의 길잡이가 되어 준다.
지은이
산 후안 데 라 크루스는 스페인 아빌라 폰티베로스의 평범한 가정에서 출생했다. 본명은 후안 데 예페스 알바레스(Juan de Yepes A’lvarez)로, 잠시 동안 메디나 병원에서 일한 후 1563년 가르멜 수도회에 입교해 후안 데 산 마티아스(Juan de san Mati’as), 즉 ‘성 마태의 요한’이라는 수도명을 받았으며 그 후 살라망카에서 수학했다.
스물다섯 살의 나이에 <맨발의 가르멜 수도회>의 창시자, 산타 테레사 데 헤수스와 운명적인 만남을 가진 후, 그녀의 가장 가까운 조력자가 되어 가르멜 수도회 개혁에 착수한다. 이 때문에 그는 거의 10년 동안 갖은 종류의 핍박을 받게 된다. 1568년, 산 후안 데 라 크루스(San Juan de la Cruz)로 수도명을 바꾸었으며, 이로 인해 우리나라에서는 ‘십자가의 성 요한’으로 알려져 있다. 핍박 가운데서도 뜻을 굽히지 않고 전심을 다해 산타 테레사를 돕다가 결국 1575년, 8개월 동안 톨레도 감옥에 갇히는 고통도 당한다.
그러다가 감옥을 탈출, 나머지 삶을 안달루시아에서 보내다가, 로마 교황청이 <맨발의 가르멜 수도회>를 가르멜 수도회로부터 분리할 것을 인허하자, 이 수도회의 몇몇 중책을 맡는다. 그 후 아메리카로 선교하러 가기 직전 안달루시아의 우베다에서 죽음을 맞는다.
1726년 베네딕토 13세 교황에 의해 시성되었으며 1993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그를 스페인어권의 모든 시인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했다.
옮긴이
최낙원은 1954년 전주 출생으로 한국외대 스페인어과 및 동대학원 스페인어문학과를 졸업한 후, 교육부 파견 국비유학생 자격으로 스페인으로 향발, 국립 마드리드대학(Universidad Complutense de Madrid)에서 수학, <스페인 16세기 가르실라소(Garcilaso de la Vega) 詩 종교적 승화과정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귀국 후, 전북대학교 스페인중남미어문학과에서 교편을 잡아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한국스페인어문학회 부회장, 편집위원장, 전북대학교 인문학연구소장, 학생처장, 미국 오스틴 소재 텍사스 주립대학(University of Texas at Austin) 방문 연구 교수를 역임했다.
주요 논문으로는 <가르실라소와 세르반테스>, <세르반테스와 보르헤스>, <스페인 망명시 연구>, <세르반테스 텍스트의 메타픽션적 성격>, <치카노 시에 나타난 정체성 연구> 등이 있고, 역서로 춘향전을 번역한 ≪La Canción de Chun-hiang≫, 편저로 ≪Conexiones de la sociedad coreana y española≫, ≪카탈루냐어-한국어 사전≫ 등이 있다.
차례
영혼과 남편 사이의 노래
영적 부인(否認)을 통해 하느님과의 합일, 즉 완성의 가장 높은 상태에 도달한 것을 즐거워하는 영혼의 노래
하느님과 사랑의 연합이 이룬 내적 교감 안에서 영혼이 부른 노래
오랫동안의 정관(靜觀)을 통해 얻은 영적 무아경에 관한 노래
하느님 보기를 강렬히 원하는 영혼의 노래
작가의 다른 노래들, 세속 노래를 영적으로 바꾼 노래들
동일한 작가의 다른 노래
세속 노래를 영적인 의미로 바꾼 노래
믿음으로 하느님 아는 것을 즐거워하는 영혼의 노래
세속 노래를 그리스도와 영혼의 영적인 의미로 바꾼 다른 노래들
복음서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에 관한 노래: 삼위일체에 대해
삼위(三位)의 소통에 관해
로만세 3. 창조에 관해
로만세 4(앞에서 계속)
로만세 5(앞에서 계속)
로만세 6(앞에서 계속)
로만세 7. 성육신(聖肉身)(앞에서 계속)
로만세 8(앞에서 계속)
로만세 9. 탄생(誕生)(앞에서 계속)
바벨론 강변을 지나는 자의 다른 로만세
단가(短歌)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밤꾀꼬리의 달콤한 노래
덤불숲과 그것의 아름다움
적막이 흐르는 밤
근심을 앗아 가는 불길의 소진